봄날의 소묘素描

 

해토머리에

꽃잎 줌이랑

무리 풀어놓았지요

한동안 내게 결박되어 있던 새들이며 꽃잎이

하늘 사방으로 바람같이 흩어졌지요

 

어스름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나는

그의 환영幻影 이끄는 무늬를 짚으며

깊숙이 들어갔었지요

아득한 소리가 나를 허물고

점차 채도를 높여가는 소리의 파랑波浪

현란한 멀미로 혼곤한 몸짓

거듭거듭 무자맥질은

마구 뭉개져버린 목탄화를 남겼지요

 

어디에도 없었어요, 나는

 

아직 흙이었을 때처럼 컴컴한 정적이었지요

가슴에 가파른 절벽을 안고

완만하게 경사진 구릉을 그렸지요

문득 가벼운 깃털같은 역광선逆光線

맨발로 아직 땅에 여린 풀을 보았지요

 

불러놓고 ,

놓아버리는 목련이 귓전을 때리네요

바람이 서둘지 않은 걸음으로 스치며

느닷없는 꽃보라를 날리네요

꽃눈 소식을 누구에게라도 알려야 할텐데요

어디에 있는가요, 그대

 

(2004/재외작품문학작품공모국제펜크럽한국본부/佳作)

초서草書

 

저들은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네

빈약한 오랫동안 버려져

하릴없이 무너지고

아무런 예감마저 없어도

쓰러질듯 일어서며 흔들리고  있네

 

때로

안개는 저들을 교묘히 감춰주고 

끝으로 선한 벌레들 가뿐 고르는 소리

 

와중에 거침없이 웃자란

반란같은 소망 푸르게 키우며

껴안네

새처럼 멀리 있다면 좋겠네

 

그러다

더러는 가슴 풀어헤치고 맘껏

널브러지고 있네, 이제야

마음 온전히 사르다 가겠네

(2004/재외작품문학작품공모-국제펜크럽한국본부/佳作)

경칩

 

1.

지난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즈음 나는

깊고도 아늑한 동굴을 찾아들어

또아리 틀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네

그리고 꿈을 꾸었지

꿈은 허기지지 않을 만큼 배를 채워 주고

갈증나지 않을 만큼 목을 적셔 주었네

없는 푸른 초원에 앉아

가느다란 바람 소리 귓전에 걸어 두고

아름다운 시도 지었다네

 

2.

꿈길을 지나 돌아도는

아름다운 시를 잃어버리고 말았네

이정표도 없는 꿈길

헤매고 다녔지만 찾을 수도 없고

다시 보자니 기억할 수도 없었네

시도 소리도 잃은 정적

막연함에 지쳐 또 다른 속으로 빠져들었네

 

3.

빛이 대지를 흔들며 오고 있다 하네

깨어나야지 깨어나야지

묵은 어둠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시간 웅크리느라 사이에

숨을 채워 넣어야지

 

(2003 5 재외동포문학의 /佳作)

수용성 우울

 공중을 떠도는 비의 전신이

하나 만나 무리를 이루면

무게를 가누지 못하여

방울져 낙하되는 그때쯤

그림자 빛으로 스며들어

갈대의 몸짓으로 흔드는 사념

 

방울방울이 이어내는 빗줄기

고이는 빗물 그리고

우울

 

맑은 유리컵을 꺼내어

빗물을 채운다, 녹아든 우울과 함께

 

절묘한 친화력을 지녔는가 그들은

투명하게 푸르른 하늘 빛으로

너머 멀리 보랏빛으로

또한 어린 시절의

연노랑 빛으로 찰랑거려

 

망각의 그늘에 가려

마른 풀처럼 초췌해진 붓을 다듬어

저들 빛깔을 탐해 본다

참으로 오랜만의 수채화를 그리고자.

 

(2002 文藝思潮 新人賞)

별은 빛으로

 

비에 꽃잎 지듯

별 떼가 져내리고 있네

 

손바닥을 펼쳐 받아 보네

저항없이 내게로

하나

더듬이 길게 뻗어

가리키네

 

달빛

길게 잡아당겨

외길로 깔아

별을 놓아주네

 

위로

서툰 걸음 걷던

넘어지며

어둠이 깨지네

 

별도 깨지네, 산산이

깨지며 너른 빛으로

둥글게 채워지네


                             (2002年 文藝思潮 新人賞) 

안개

흰 여백으로

풀어놓고 어쩌라는 거야

수묵(水墨) 한 점

떨어뜨려 보라고

발묵(潑墨)으로 번지며
깊은 산이 내뱉는
긴 메아리

푸드득
이어지는 새의
비상

(2002 文藝思潮 新人賞)
 

-당선소감-    김현진

   쓰는 일도, 그림 그리는 일도 참으로 외로운 가슴앓이입니다.

 갇혀있는 () 정수를 길어 올리는 힘든 작업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던 나를 만납니다.

 하기에 이런 외로움이, 이런 가슴앓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정과 성을 다하여 갈고 닦아 보렵니다.

 미숙한 저의 시를 보아주시고 따스한 손으로 잡아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쁜 소식을 여러 저의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200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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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심사위원:김창직, 김성열)

공감각적 이미지로 병치된 사물시다.

시의 은유적 표현 속에는 단순한 영상(이미지)만이 아닌 소리와 의지(, 정서) 함께

울려 감동의 폭이 넓다.

발묵(潑墨)으로 번지는 깊은 산의 안개는 메아리로 울리고, 푸드득거리는 새의 비상으로

어지는 시적 변용을 거치면서 청각과 시각을 함께 자극하고 있다.

간략한 표현을 통하여 깊은 감동의 여운을 남겨준 좋은 시라 있다.

김현진 시인은 시적 소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나 싶게 시를 꾸리고, 언어를 능숙하게

련하고 있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 바라면서 당선을 축하하는 바이다.

(2002 7월 月刊 文藝思潮 )

꽃의 기원

 

바람

아득한 뽀얗게 휘감는

기운을 보셨나요

 

그대가 허공을 날며 헤매일

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별들은

어떻구요

 

아시나요

까르르

잘디 물방울 깨고

터져 나오는 웃음 소리

혹은

아문 듯한 상처가 돌연

후욱

내뿜는 농도 짙은

 

그들의 지극한

갈망과 염력(念力)을요

순간처럼 보이지만 어디 그렇던가요

달빛 내리는 섬에서

 

달빛이 섬에 내려

포복 자세로 살그미 퍼지는

그런 밤마다

밤마다 별이 날아 다닌답니다

그림자는 침묵하여 없어도

외로운 이들의 종적을 잘도 찾아내고요

밤이면 괜스레 까탈부리던 절망도 스르르

녹아 취해버리거든요

 

어떤 섬인가

궁금하거든 지날결에 들러보세요

          

 

아리빵빵, 날치잡이

오뉴월 아열대의 해풍이 불면 
아리빵빵 아리빵빵
세상 끝 한 줌의 평화 남은 작은 섬 향해
날치가 비상을 한다네
가슴 지느러미 쫘악 펼쳐 
꼬리 지느러미 쭈욱 뻗어
하늘이 바다라
바다가 하늘이라
푸른 바람 헤치며 흰 파도 박차고
날치가 휙휙 흥겨운 비상을 한다네
아리빵빵 아리빵빵
날치야 날아라 갈매기보다 더 높이
날치야 날아라 바람보다 더 빨리

초승달 같은 조각배에 용맹 싣고 희망 싣고
너를 맞이하러 가는 어부들의 노래 소리
아리빵빵 아리빵빵
흥겨워라 노래 소리

노을빛 바다 가득 출렁일 즈음
날치는 어부들의 노래에 취해 버린다네
아리빵빵 아리빵빵
어스름이 깔리면
어부들의 노래 소리만 남는다네

##「아리빵빵」은 타이완 동쪽에 떠있는

  낙도—‘란위 원주민 다우족이 날치를

일컫는 말이다.

(2003년 시세상동인시집-인터넷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