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부기불

모진 신열

되짚어 돌아오는

새벽빛이 트고 있었다

 

기다란 실골목으로

시간이 빠져나가며 내내 곁을 지키던

어스름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숨죽여 아닌 작열하던 사념 저편

차단하고 있던 고치를 허물자

서서히 성기어지는 밀도

 

하늘에 놓인 성운星雲 사이로 깃든

젖은 눈빛의 신음이 목에 감겨와

물결로 잔잔히 번지며 번지며

아주 가지 못하고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꽃잎 붉히는가

 

별빛이 가슴에 차며

허우적거릴수록 기억이 그물은 더욱 엉기고 

밖으론 꽃눈개비 난데없는

아우성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

 

희푸른 이내 감도는 끝에

등대, 뿜어내는 고적한

그해 여름, 광풍폭우 지난 뒤

                

무지개빛

빨강에서 보라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길을 가늠해 보는 저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바람 치던 날이

어디 오늘 뿐이던가

잠깐 퇴색된 저녁일텐데

그냥 두지

별일이야 있을까

하루의 피로를 개켜 누이고

즉흥적인 꿈의 날개를 폈다

 

돌연

전설같은 혼돈과 미명

산은 기이하고 허망한 굉음으로 울부짖으며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음절도 리듬도 박자도 무시한 소리들

비에 젖으며 바람에 휘청대며

한데 어우러졌다

 

죽음이란 그저 하잘 없는

우발적 사건이라 계수해 버린

온기없는 정서의 비바람이 남긴 언어였다

 

산은 무너지다 못해

울컥울컥 무거운 바윗덩이를 토해내는데

주검을 보듬고 있던 뫼도

울컥울컥 유골을 토해내는데

새로운 죽음은 시신을 감추고

내주지 않는다

 

시간은 여전히 착실하게 흐르고

하늘은 신열이 나는지 혼미상태로

간간히 울부짖는다

 

초혼의 깃발이

바람도 없이 마구 흔들린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어서 돌아오라

부르는 소리 애간장 끊기는 소리만

꺼이꺼이- 꺼이꺼이-

가없는 하늘에 솜털 구름처럼 흩날리는데

용설란처럼

 

처음 가졌던 그리움으로

처음 가졌던 소망으로

그대로

찬찬히 키우다

한번만,

사는 동안 그렇게 한번만

피우고

한껍에 아주 가버린다 해도

 

그렇게 한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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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舌蘭 CENTURY PLANT

   용설란은 좀체로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일생에 한번의 꽃을 피우는데 일단 꽃을 피우면

   신속히 시들어 죽어간다.

   비교적 건조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생장하는 식물로 생명 주기는 수십년에서

   백년 이상에 달한다. 그래서 세기의 식물이라는

 아호를 갖고 있다.

불꽃놀이

 

혼돈미명의 봉쇄지대가 허물어지는 일이다

깊은 곳에 묻혔던 빛이 태어나는 일이다

밖의 , 세상 밖의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차마 뱉지 못한 , 불티 핑계삼아 터뜨리는 일이다

허나 개중 한숨처럼 꺼져버린 불티도 있으리니

어쩔 것인가

상공으로 타오르지 못한 시꺼멓게 숨죽은 그것은

누가 기억해 것인가

휘황찬란한 불꽃축제에 최면 걸린 군중의 눈이

타다 말고 스러진 불티를 있을 것인가

 

와글와글 환호성

만개한 불꽃 떠난 꽃술은 밑으로 내리고

 

하늘 복판에 놓인 달이 잠시 휘청거린다

가슴에 품었던 하나 소리없이 진다